문세광 배후는 청죽회, 중정 수사 책임자 이듬해 국회의원 등극
박정희 가문을 멸족 시키기 위한 공작은 김일성이 직접 챙겼던 과업으로서, 69년 1.21 김신조 청와대 기습사건 이후 집요하게 진행되었습니다.
1970년 현충원 현충문 폭파사건 실패, 그 이후 문세광에 의한 살해 시도로 이어진 것입니다.
문세광이 김포공항에 도착했을때 안내 호송역할을 한 것은 김사복으로서 8월 14일 까지 문세광을 직접 안내하고 호송했으며, 8월 15일 암살을 결행하는 날에는 김사복이 빠지고 다른 운전사를 고용했는데, 그 기사는 김사복의 스페어라고 하지만, 당시 호텔 나라시 택시는 개인적인 스페어 보다는 호텔 나라시 택시 전체를 담당하는 스페어 운전사가 있었던게 통상적인데, 바로 그날만 스페어를 고용했는데 신원이 불명하다고 봐야 하며 공작이라고 봐야 합니다.
중앙 정보부 수사 책임자는 그 스페어 기사를 수사를 하고 나중에 김사복도 수사를 했다고 하지만 모두 무혐의 처리를 했는데, 문세광과 일주일 내내 붙어 있었다면 최소한 공범이 되는 것임에도 무혐의 처리를 해주고 그 수사관은 다음해 국회의원이 되는 신기록을 세웁니다.
그리고, 무혐의 처분을 받은 김사복은 이듬해 문세광과 함께 한국에 오기로 되어 있었던 힌츠페터와 접선을 하고 518때 힌츠페터와 혁혁한 혁명적 과업을 달성하게 됩니다.
육영수 여사가 제거되고, 박근혜가 영부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자 중앙 정보부는 다시 박근혜 감시역으로 최태원 목사를 박근혜 측근으로 앉히게 되는데, 이때 공작 내용이 기가 막힙니다.
최태민은 그때 막내딸 최순실을 박근혜 수행원으로 지정을 하는데, 결국 박근혜도 최순실에 의해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을 보셨으면 이제는 다 아셨으리라 생각 합니다.
한국 대통령들의 모든 비극은 정보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등한 시 하는데서 출발을 하고, 그 결과는 모두 비명횡사를 당하게 되거나 감옥을 가게 되는 비운을 겪게 되는데, 오직 북한만 정보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결국은 남한을 실질적 지배하게 된 현재 상황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오늘의 암살자 영화 논쟁은, 북한에 의한 유엔사 고위 장교를 살해 공작이 드러 날까봐, 민주당의 파트너인 인민무력당에 의해 살포된 것이고, 가장 굵은 목소리를 내는 유영하는 테블릿 조작의 주범격인 김한수를 비밀리 보호하고 있었던 사실을 기억해 두시길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