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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권력으로 만든 518 – 종로경찰서장 1명 > 광주시민 20만명


1968년 1월21 서울 청와대 뒤에 김신조 일단 31명 4열 종대로 청와대를 향해 행진을 할 때 신고를 받고 출동한 종로 경찰서장은 혼자서 권총 1자루를 빼들고 이들 행진 부대를 제지하고 검문을 했습니다.

 

김신조 일당은 “우리는 CID 부대다 작전중이니 막지 말라.” 하며 엄포를 놨고, 이에 최서장은 여기는 어느 누구도 허가없이 들어 올수없다 행군을중단하라.” 막아 서자 김신조 일당은 기관총을 꺼내 발포를 했고, 최서장도 권총을 발사했지만 즉사했고, 수경사 병력이 출동하자 김신조 부대는 모두 도주를 했습니다.

 

1980년 5월21 저녁 전남도청 앞에는 아시아 자동차에서 탈취한 군용차 행렬들이 도청을 향해서 진군을 했고, 선두 짚차에는 여장을 한 지휘관이 선탑을 했고, 다음날에는 전남도청 광장에서 여장을 한 지휘관이 짚차에 탄 체로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있었고, 건장한 체격의 남자들은 수첩에 메모를 하고 있었으며, 그 다음날에는 전남도청 뒷문으로 청소차 16대가 빠져 나가는 행렬을 20만 광주시민들이 목격을 했고, 20만 광주시민들은 그날로부터 46년이 지난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그 당시 목격했던 광경을 이야기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늘은 1995년 12.27일자 중앙일보를 소개하는데, 그 지면에는 그 동안 어느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송암동 오인사격” 사건에서 지뢰가 사용되었다는 작전 참가 군인들의 증언이 실려 있습니다.

 

당시 11공수여단 63대대 소속 權모(41.당시 하사),林모(40.중사),金모(47.대위)씨 등은 『지뢰가 터지면서 동료들이 무참히 죽어나가는 광경을 목도한 순간 눈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 

『한참 교전뒤 사격을 중지해보니 땅바닥엔 허리가 잘려나간 시체,손발이 없어져 신음하는 동료들이 즐비했어요.이들을 후송하면서 부대원들은 거의 이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저 당시만 해도 청죽회 장성들의518 군사반란 개념이 없었기에, 군인들이나 기자들이나 상황인식이나 파악이 불가능해 목격한 사실만 증언을 한 것이나, 실상은 북한군 이을설 중장의 작시로 전교사령관의 지시로 135 공병대대가 23일 밤 작전지역인 20사단 작전관할지역에서 무단으로 야간전투공병 작업으로 대전차 지뢰와 대인지뢰 매설을 했던 것입니다.

 

지뢰를 사용하는 전투는 정규전 뿐이며, 국지전이나 대간첩작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무기가 지뢰이며, 지뢰를 사용한 이상 518은 사태 사변 민주화 같은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되는 전쟁이지만, 지금 버젓이 518 민주화라고 부르고 있고, 20만 광주시민들은 그들이 눈으로 본 광경에 대하여 46년간 북한을 위해서 입을 닫고 있습니다.  

 

애국시민들 께서는 광주는 그런 곳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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