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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의 이중성, 전두환 수사는 반란 윤흥정 명령거부 반란은 침묵


최규하의 이중성보다 더 놀라운 것은, 똑똑하다고 소문이 난 이영돈PD와 김용삼 기자의 침묵을 넘어선 사실 왜곡입니다.

 

정승화는 자신이 계엄사령관이면 육참총장인 것을 기화로 합수부의 조사를 기피하거나, 합수부 조사에 지침을 주는 식으로 박정희 저격사건에 대한 합수부 수사를 방해했고, 최규하는 이런 보고를 받고서도 전두환의 합수부장 경질 인사 방침을 정승화와 협의 했었습니다.

 

이야기한 바와 같이 정승화는 청죽회 비밀회원으로서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는 현장에 동행을 했고, 중정직원들이 청와대 경호실 직원들을 제거하기 위해 M16소총 수십발을 발사하고 확인사살을 하는 옆방에서 식사를 하면서도 총소리를 못들었다고 했고, 이 사건 수습을 위해 육본에 도착하자 마자 수경사 병력을 동원해 청와대를 포위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이는 월권행위였음에도 진술을 거부했었지만, 정승화는 합수부에 진술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의혹을 지우는 등 비협조 했고, 최규하는 사건의 중대함을 무시하고 계엄하에서 계엄사령관에 대한 과도한 조사는 좋지 않다는 식으로 덮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1980.5.21 오전 10시 육본은 정식 인사발령 명령으로 소준열 소장을 전투교육사령부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윤흥정 사령관은 직위 해제를 명했음에도, 윤흥정은 인사 명령서를 소지하고 전교사에 도착한 소준열 소장에서 자신은 당분간 전교사 사령관 직을 물러나지 않겠다고 버텼고, 오후 3시 40분 수협빌딩 집단 발포로 이을설 부대원 412명이 집단 몰살을 당하는 사건이 보고되자 즉각 현장에 11공수여단장 최웅 준장을 대동해 출동해, 현장을 확인하고 광주 주둔 공수부대원들의 광주시 외곽철수명령을 하달하고  소준열 소장에게 전교사 사령관 직을 넘긴 사실이 있었습니다.

 

계엄하에서 계엄사령관의 인사명령은 대통령 결재를 득한 사항으로 운흥정 사령관의 사령관직 해임 거부는 반란 행위이며, 해임시간 이후에 공수부대원들의 광주 철수 명령을 내린 것은 당연히 반란행위에 해당되는 국기를 흔드는 중대한 행위입니다.

 

윤흥정 사령관의 공수부대원들의 광주철수 명령으로 11공수여단 수협빌당 집단 발포로 몰살된 이을설 부대원 412명의 시신을 바로 앞 전남도청 지하로 숨길 수가 있었고, 이을설 북한군 중장은 전남도청을 접수해 몰살된 북한군 412명의 3일장을 광주시장의 협조로 비밀리에 치를수가 있었고, 23일 청주로 발인이 끝난 북한군 시신 430구 처리 후 24일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의 사형을 집행하고 11여단에게 복수를 한 후 25일 01시에 아시아 자동차에서 탈취한 군용차 19대에 분승해 광주를 빠져 나가 백수해안에 대기하고 있는 북한 상륙함에 탑재 상태로 승선해 공해상을 빠져 나가 북한으로 귀환할수 있도록 이적행위를 한 것으로, 국가 존망에 관련한 반란 행위를 자행한 것이고, 최규하는 이런 명백한 반란행위에 대하여 이광노를 시켜 적당한 수위로 재조사를 하게 해 면죄부를 주었던 것입니다.

 

똑똑하다고 소문이 난 이영돈 PD와 김용삼 기자가 이런 사실은 입밖에 내지 않고 오직 이광노 장군의 재조사가 완벽했다는 식으로 두둔을 하는 것은 있을수 가 없는 행위로 국민들에게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설명을 반드시 해야만 할 것 입니다.

 

의무를 행사하려는 전두환은 반란으로 명령을 거부하고 북한군 시신을 숨기고 철수를 보장한 윤흥정의 반란은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이런 사실을 숨기고자 이을설이 철수한 날 광주를 방문해 전남도청에 들어가겠다고 연막을 쳤던 최규하의 반역행위도 언젠가는 다 조사가 되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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