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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정 담

김대중 여단 반란군의 16가지 518 군사작전 -11호 작전-




11. 위 집단 발포사건으로 사망한 상당한 시신들은 도청 지하에 숨겨 놓았다가, 그 시신들 얼굴에 하얀색 페이트 칠을 해서 입던 옷 그대로인 상태로 각 청소차 1대에 시신 25구씩을 싣고 수십대 청소차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는 사진이 당시 타임지 표지로 실린 적이 있었고, 그때 시신들의 손발이 부패가 전혀 안된 상태로 있었는데, 왜 청주에서 발견된 430여구 시신들이 25명 단위 묶음으로 큰 비닐에 싸여 집단으로 매장됐으며, 왜 각 시신들은 옷을 다 벗기고 칠성판에 올려 놓고 비닐로 싸서 처리했는지 조사를 해 주십시오.


1980년 당시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고, 그 이후 XT 컴퓨터가 보급되고 하이텔 천리안 같은 통신망이 보급되면서 뉴욕 타임즈 표지에 광주에서 청소차가 수십대가 줄을 지어 어디론가 가는 사진이 실렸는데, 맨뒤 청소차에는 실려있는 시신들이 가장 근접 촬영되어 자세하게 볼 수가 있었는데, 얼굴에는 전부 하얀색 페이트가 목까지 칠해져 누가 누군지 확인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었고, 손과 발은 부패가 전혀 안된 상태로 실려 있었는데, 죽을 때 경직된 자세 상태로 청소차 적재함에 실려 있어서 차곡차곡 쌓을 수가 없어 그냥 마구잡이로 실려 져 있었는데, 옷인 죽을 때 입었던 그대로였습니다.


1990년 광주시 의사회에서 발간한 518 의료집에는 당시 전남대 의대 소속 레지던트가 도청앞 광장에서 도청지하에 신분증 없는 시신 30여구가 얼굴에 하얀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란 소문을 듣고 그날 일기장에 적었다가 518 의료집에 그대로 실어 발표도 했었습니다.


청주 축구장 공사때는 시에서 하는 공사라 공사 공고가 나가게 되면, 그 일대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는데, 만일 그 일대가 공동묘지였다면 지번이 있고, 그 지번에 대한 이장공고가 나게 되고, 이장업체들이 입찰을 해서 낙찰된 업체가 시신들을 이장하게 되는데, 시신 이장도 관계법에 따른 절차를 준수하고 1구당 얼마 씩 받게 되어 있는데, 청주에서 430여구 시신이 발견된 곳은 공동묘지로 지정되지 않은 곳이라 당연히 암매장된 시신인 것 입니다.


이로써 도청앞 집단 발포는 오후 1시 또는 1시 30분이 아닌 3시30분이 맞고 그때 11여단 62대대 4지역대가 수협빌딩 옥상에서 발포한 집단사격으로 북한군 400여명 사살된 것은 틀림이 없고, 당시 518 기념재단 발표와도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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