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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정 담

5월20일 밤8시에 육본이 공수부대 시외철수 명령을 내린 이유와 진실



구독자님께서 1980년 5월20일 밤8시에 광주시내에 진압군으로 주둔했던 공수부대의 시외철수 명령을 내린 것에 대하여 질문을 하고 계시고, 이 명령이 20사단과 관련이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물어 오셨습니다.


문제는 5월20일 밤8시에 육본이 공수부대 시외철수 명령을 지만원과 김대령이 언급하지 않고 518 기념재단과 전남대 518연구소에서도 절대로 언급하지 않아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육본의 명령은 명령이 아닌 전투교육사령부의 건의를 재가한 것으로, 20일 오후 2시 이을설 중장의 군분교점령 작전이 실시되자 만일 작전 실패가 되어 북한군의 존재가 드러날 것에 대비해 윤흥정 전투교육사령관이 핑계를 대기위해 취한 조치였을 뿐이고, 윤흥정은 이 명령서를 숨기고 있었는데, 승인이 난 시간이 바로 군분교 점령작전의 하이라이트인 아시아 자동차 진입로 절개절단 그리고 톨게이트 방향 장애물 설치 야간전투공병 작업과 차량 시위가 절정에 달해 군분교 점령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육본의 승인서가 21일 오후 4시 수협빌딩 옥상에서 북한군에게 집중사격을 가해 400여명을 사살하게 되자, 즉각적인 철수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되게 됩니다.


아래 영상은 미국 국회 도서실에 영구 보존되는 영상자료로서 럼블 폭파에 대비해 저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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