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글에 대한 내용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해를 돕기 위해 지금 관련 저술(<5월 전쟁과 금남로 대첩> & < 518 백문 백답>)을 준비하고 있는 중 일부를 밝혀 드리겠습니다.
이 글을 보고 관련 내용 수정 보완해 주시오면 감사하겠습니다.
10. 집단 발포명령과 금남로 대첩
1) 금남로 전투와 대첩이란 ?
5.18은 제 2의 6.25 전쟁으로서, 넓은 의미로는 5월 19일 11공수 카프레이드 시부터 5월 21일까지 금남로에서 11공수와 북한 김일성의 최정예부대 북한특수군이 주도하는 폭도들 전반과 일어난 전투를 말한다. 이를 좀더 확장하면 저들이 7공수와 맞붙은 5월 18일부터 철군하는 24일지(25일 새벽)까지로 확장해 나갈수도 있다. 좀더 확장하면 5월 15일 연고대생 600명이란 이름으로 서울역에서 데모대와 합류했던 싯점까지 거슬러 올라갈수 있게 될 것이다.
좁은 의미로는 5월 21일 아침부터 오후 특전사 철수하기 까지를 <금남로 전투>라 일컫는다. 이 전투에서 아군은 무기도 실탄도 별로 없이 가장 막강한 상대와 엄청난 무기와 장비를 소지한 최강의 적들에 대해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기에 이를 <금남로 대첩>이라 한다 .
많은 역사학자들이 이는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을 능가하며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 을 능가하며 넬슨의 <트라팔가 해전> 을 능가하는 전투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단 한번의 전투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신기원 을 이룬 것으로 세계 전쟁사를 다시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이 많이 산견되고 있는 것이다.
2) 사격개시- 산발적 사격과 조준사격
그 <신호탄 발사>를 보고 지역대 장사병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사격개시 신호>로 보고 산발적인 사격이 시작 되어졌던 것이다.
이때 하나님의 계시가 장병들에게도 함께 임했다.
어느 누가 지시하지 않았지만 각종 인식표(붉은 띠, 흰띠, 리본, 완장, 견장 등-이들 인식표는 각자의 부대 소속을 의미 : 우뢰3여단, 534군 부대, 특수 8군단 등)를 차고 있는 주동하는 날쌘자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던 것이다.
일부는 하늘을 향해 <위협 사격>을 했지만, 엄청난 위협을 감지한 상당수 하사관들은 적 핵심 분자(북한 특수군과 고정 간첩단 및 적성화된 핵심 추종세력)들을 향해 <정조준>하며 조준사격을 가했던 것이다.
3) 총/사격을 무서워하지 않는 북 특수군과 시위대
처음 사격을 하여 수명 내지 수십명이 쓰러지는데도 계속 진격의 고삐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특전사에는 실탄이 없다고 강력히 믿고 있었기에.
그래서 한참 쏘고 많은 특수군들이 동료들이 쓰러진 연후에야, “아니, 이게 진짜네! 진짜네!” 하면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연변으로 튀어나오곤 했다.
일부는 죽거나 부상당한 동료들을 구출해주려는 특수군들을 향해서도 발포를 가했다.
그러나 사격은 계속 되었다. 놈들이 거의 다 쓰러질때까지.
이제 적들의 진격이 주춤해졌다. 잠시 후 전남대 부근에서 굉장한 자동소총 총성이 울렸다. 우리 쪽을 향해 갈기는 총성이었다. 케레바 50 내지 LMG 사격이 개시된 듯했다.
4)지역대장이 사격중지 요청을
사격은 4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적들은 여지없이 쓰러져 갔다. 1진에 이어 몰려온 2진들 까지 그리고 부상병들을 구하기 위해 오는 자들 까지 거의 모든 적들을 진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윽고 잠시후
어디서 올라왔는지 지역대장의 모습이 아련히 비춰졌다 .
“이제 그만됐다” 하면서 나보다 “사격 중지 하라” 고 말했다.
어디에 계시다가 왔는지 경위도 물을수 없는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다소 적들의 행동이 주춤하다가 잠잠해 졌기에 부대원들을 향해 지역대장의 뜻을 받들어 “사격중지!” 를 외쳤다.
(추가내용1)
1> 사실 그 당시 이미 적의 본대는 거의 박살이 났고 부상당한 패잔병 몇명만 남아 동료들을 애타게 호소 하려했지만 그나마도 그렇게 할수 없었다.
2>시위대들은 아예 얼씬도 못했다. 시위대는 평소 용감한척 했지만 위급시에는 먼저 도망치는 자들인 것이다.
3>그러나 적들은 그래도 동료들을 구하려는 의지를 나타내 보였지만 그 당시 거의 전멸된 상황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할수도 없었던 상황인 것이었다.
4> 만약 이런 적정 파악을 정확하게 했더라면 518 은 이날 종결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 이을설도 혼비백산 했던 것이다.
(추가내용2)
1>사격중지 명령을 당시 CAC 사령관이 16:00에 발동했던 것이다. 그는 전날 11공수를 퇴각 시키는 명령을 발하고자 상부 지시를 받았지만 11공수를 궤멸당하게 하려고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가 북한 특수군이 다 죽는다는 북한 이을설 장군의 항의에 바로 즉각적인 사격중지 명령에 이어 철수 명령을 하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2> 이는 당시 주요 지휘관들이 거의 모두 적들에게 매수 당했거나 내통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3>이런 명령을 받았기에 지역대장이 피했다가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대대장이 받은 지시를 나에게 전달하러 왔던 것이었다. 당시 굉장히 뻔뻔스런 얼굴로 비쳐줬다.
------------------------------------------
이제 적들의 저항은 사라졌다. 그러나 전남대 조선대 부근에서 우리쪽을 향해 케레바 50 사격하는 소리가 귓전을 울려퍼졌다.
곧 시가전이 개시될 것 같았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시가전 !!
엄청난 위협을 감지하면서 옥상에서 부대원들을 내려가게 하가 함께 내려와 분수대 앞에 재집결하게 되었다.
5) 완벽한 하나님의 계시 – 카이로스적 시간
사격명령도 완벽했지만 사격시간 또한 완벽했다.
만약 그때 그 명령 시간을 단 5분이라도 지체했더라면 전세는 전혀 딴판이 되었을 것이다. 놈들과 폭도들이 이미 특전사와 육박전이 벌어져 도저히 사격이 불가하게 되었을 것이며, 그러면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특전사는 그 현장에서 궤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만약 시간이 조금만 빨랐으면 놈들이 모두 한곳에 집합되기 전에 즉, 1진만 오고 2진은 채 오기도 전에, 총성을 듣고 흩어져 버려 몇명 사살되지 못했을 것이므로 추후 몰려온 적으로 인해 특전사가 모두 전멸(全滅)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확한 시간에 발포하게 했으므로 북한군 전체가 모여진 짧은 시간에 놈들을 거의 섬멸하게 함으로 인해 놈들의 1진은 물론 2진 까지 진멸(盡滅)함으로 인해 재공격 의지를 상실케 했던 것이다.
그때 그 당시의 시간은 정말 완벽한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를 때 돌멩이를 던진 그 순간도 완벽한 카이로스적 시간이 아닐까 본다.
사도바울이 예수 믿는 자를 다 처형하기 위해 다메섹 도상에서 말을 타고 갈시 강력한 빛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 역시 완벽한 카이로스적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들로 인해 세계 역사는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갈이 이런 카이로스적 시간에 의해 대한민국의 역사는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즉 당시 적화통일 될뻔 했던 위기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살려 나가는 중차대한 역사가 전개될수 있었던 것이다. ★(~ 이하 중략~ )
재확인 - 신호탄 발사
이는 일반 신호탄이나 공포탄이 아니다. M 16 소총 1발이었던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우리는 5월 21일을 518 전쟁 승리의 날로 지정해서 국경일로 삼아야 마땅할 것이다.
잘 입력이 안되어 9호 작전 관련한 댓글을 아래에 명기하였습니다
청척모님께 !!
윗글에 대한 내용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이해를 돕기 위해 지금 관련 저술(<5월 전쟁과 금남로 대첩> & < 518 백문 백답>)을 준비하고 있는 중 일부를 밝혀 드리겠습니다.
이 글을 보고 관련 내용 수정 보완해 주시오면 감사하겠습니다.
10. 집단 발포명령과 금남로 대첩
1) 금남로 전투와 대첩이란 ?
5.18은 제 2의 6.25 전쟁으로서, 넓은 의미로는 5월 19일 11공수 카프레이드 시부터 5월 21일까지 금남로에서 11공수와 북한 김일성의 최정예부대 북한특수군이 주도하는 폭도들 전반과 일어난 전투를 말한다. 이를 좀더 확장하면 저들이 7공수와 맞붙은 5월 18일부터 철군하는 24일지(25일 새벽)까지로 확장해 나갈수도 있다. 좀더 확장하면 5월 15일 연고대생 600명이란 이름으로 서울역에서 데모대와 합류했던 싯점까지 거슬러 올라갈수 있게 될 것이다.
좁은 의미로는 5월 21일 아침부터 오후 특전사 철수하기 까지를 <금남로 전투>라 일컫는다. 이 전투에서 아군은 무기도 실탄도 별로 없이 가장 막강한 상대와 엄청난 무기와 장비를 소지한 최강의 적들에 대해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기에 이를 <금남로 대첩>이라 한다 .
많은 역사학자들이 이는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을 능가하며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 을 능가하며 넬슨의 <트라팔가 해전> 을 능가하는 전투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단 한번의 전투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신기원 을 이룬 것으로 세계 전쟁사를 다시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들이 많이 산견되고 있는 것이다.
2) 사격개시- 산발적 사격과 조준사격
그 <신호탄 발사>를 보고 지역대 장사병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사격개시 신호>로 보고 산발적인 사격이 시작 되어졌던 것이다.
이때 하나님의 계시가 장병들에게도 함께 임했다.
어느 누가 지시하지 않았지만 각종 인식표(붉은 띠, 흰띠, 리본, 완장, 견장 등-이들 인식표는 각자의 부대 소속을 의미 : 우뢰3여단, 534군 부대, 특수 8군단 등)를 차고 있는 주동하는 날쌘자들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던 것이다.
일부는 하늘을 향해 <위협 사격>을 했지만, 엄청난 위협을 감지한 상당수 하사관들은 적 핵심 분자(북한 특수군과 고정 간첩단 및 적성화된 핵심 추종세력)들을 향해 <정조준>하며 조준사격을 가했던 것이다.
3) 총/사격을 무서워하지 않는 북 특수군과 시위대
처음 사격을 하여 수명 내지 수십명이 쓰러지는데도 계속 진격의 고삐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특전사에는 실탄이 없다고 강력히 믿고 있었기에.
그래서 한참 쏘고 많은 특수군들이 동료들이 쓰러진 연후에야, “아니, 이게 진짜네! 진짜네!” 하면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해 연변으로 튀어나오곤 했다.
일부는 죽거나 부상당한 동료들을 구출해주려는 특수군들을 향해서도 발포를 가했다.
그러나 사격은 계속 되었다. 놈들이 거의 다 쓰러질때까지.
이제 적들의 진격이 주춤해졌다. 잠시 후 전남대 부근에서 굉장한 자동소총 총성이 울렸다. 우리 쪽을 향해 갈기는 총성이었다. 케레바 50 내지 LMG 사격이 개시된 듯했다.
4)지역대장이 사격중지 요청을
사격은 4시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적들은 여지없이 쓰러져 갔다. 1진에 이어 몰려온 2진들 까지 그리고 부상병들을 구하기 위해 오는 자들 까지 거의 모든 적들을 진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윽고 잠시후
어디서 올라왔는지 지역대장의 모습이 아련히 비춰졌다 .
“이제 그만됐다” 하면서 나보다 “사격 중지 하라” 고 말했다.
어디에 계시다가 왔는지 경위도 물을수 없는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다소 적들의 행동이 주춤하다가 잠잠해 졌기에 부대원들을 향해 지역대장의 뜻을 받들어 “사격중지!” 를 외쳤다.
(추가내용1)
1> 사실 그 당시 이미 적의 본대는 거의 박살이 났고 부상당한 패잔병 몇명만 남아 동료들을 애타게 호소 하려했지만 그나마도 그렇게 할수 없었다.
2>시위대들은 아예 얼씬도 못했다. 시위대는 평소 용감한척 했지만 위급시에는 먼저 도망치는 자들인 것이다.
3>그러나 적들은 그래도 동료들을 구하려는 의지를 나타내 보였지만 그 당시 거의 전멸된 상황에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할수도 없었던 상황인 것이었다.
4> 만약 이런 적정 파악을 정확하게 했더라면 518 은 이날 종결하게 되었을 것이다.
당시 이을설도 혼비백산 했던 것이다.
(추가내용2)
1>사격중지 명령을 당시 CAC 사령관이 16:00에 발동했던 것이다. 그는 전날 11공수를 퇴각 시키는 명령을 발하고자 상부 지시를 받았지만 11공수를 궤멸당하게 하려고 철수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가 북한 특수군이 다 죽는다는 북한 이을설 장군의 항의에 바로 즉각적인 사격중지 명령에 이어 철수 명령을 하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2> 이는 당시 주요 지휘관들이 거의 모두 적들에게 매수 당했거나 내통하고 있었음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3>이런 명령을 받았기에 지역대장이 피했다가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대대장이 받은 지시를 나에게 전달하러 왔던 것이었다. 당시 굉장히 뻔뻔스런 얼굴로 비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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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적들의 저항은 사라졌다. 그러나 전남대 조선대 부근에서 우리쪽을 향해 케레바 50 사격하는 소리가 귓전을 울려퍼졌다.
곧 시가전이 개시될 것 같았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시가전 !!
엄청난 위협을 감지하면서 옥상에서 부대원들을 내려가게 하가 함께 내려와 분수대 앞에 재집결하게 되었다.
5) 완벽한 하나님의 계시 – 카이로스적 시간
사격명령도 완벽했지만 사격시간 또한 완벽했다.
만약 그때 그 명령 시간을 단 5분이라도 지체했더라면 전세는 전혀 딴판이 되었을 것이다. 놈들과 폭도들이 이미 특전사와 육박전이 벌어져 도저히 사격이 불가하게 되었을 것이며, 그러면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특전사는 그 현장에서 궤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만약 시간이 조금만 빨랐으면 놈들이 모두 한곳에 집합되기 전에 즉, 1진만 오고 2진은 채 오기도 전에, 총성을 듣고 흩어져 버려 몇명 사살되지 못했을 것이므로 추후 몰려온 적으로 인해 특전사가 모두 전멸(全滅)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확한 시간에 발포하게 했으므로 북한군 전체가 모여진 짧은 시간에 놈들을 거의 섬멸하게 함으로 인해 놈들의 1진은 물론 2진 까지 진멸(盡滅)함으로 인해 재공격 의지를 상실케 했던 것이다.
그때 그 당시의 시간은 정말 완벽한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를 때 돌멩이를 던진 그 순간도 완벽한 카이로스적 시간이 아닐까 본다.
사도바울이 예수 믿는 자를 다 처형하기 위해 다메섹 도상에서 말을 타고 갈시 강력한 빛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 역시 완벽한 카이로스적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들로 인해 세계 역사는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갈이 이런 카이로스적 시간에 의해 대한민국의 역사는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즉 당시 적화통일 될뻔 했던 위기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살려 나가는 중차대한 역사가 전개될수 있었던 것이다. ★(~ 이하 중략~ )
영상이 안보이는군요
정말 이게 나라며 이게 배운 사람들이 사는 땅덩어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