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와 검찰 전교사는 518 조사를 하면서 의도적으로 전교사와 연고대생 600명이 함께 했던 군사작전을 다 누락을 시켜 버렸습니다.
518 최초 발단 사건인 1차 아시아 자동차 기습사건, 19일 나주 예비군 무기고 피탈사건, 20일 군분교 점령사건 그리고 21일 도청앞 집단 발포 사건은 아예 누락을 시켜 없애 버렸고, 군용차 19대 미반납 사건도 일체 언급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 미반납 군용차 19대로 연고대생 600명이 25일 01에 목포로 도주를 했고, 목포 앞바다는 해군 경비 병력이 없었다는 내용도 누락 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조작은 바로 도청앞 집단 발포 사건으로 실제로 30여분간 11여단 4지역대 65명만이 전원이 400여발이 넘는 실탄을 지급받고 군중속에서 비표시를 하고 군중들을 선동했던 연고대생 402명을 한명 한명씩 조준 사격을 해서 사살을 했었는데, 이 집단 발포를 완전 누락시키고, 조갑제 지만원 같은 인사들을 내세워 오후 1시 30분에 집단발포를 했다고 국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 입니다.
클릭 하시면 도청앞 집단 발포 영상이 나옵니다.
우선 피해 당사자라고 하는 518 재단측 주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 아 래 -
국방부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보고서를 보면 21일 오후 1시께 금남로에서 시위를 벌이던 시위대의 장갑차와 버스가 공수부대 저지선을 돌파하려고 하자 1차 사격이 있었다. 이어 시위대가 도청 쪽으로 밀고 들어오자 2차 집단 발포가 자행됐다. 또 산발적인 시위대에 대한 조준사격이 벌어졌다. 마지막 3차 사격이었다. 이처럼 도청 앞 집단발포는 시차를 두고 3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신군부와 극우 인사들이 주장하는 장갑차와 버스에 대한 자위권 차원의 사격은 단지 1차 사격을 의미하는 것이다. 도청 집단발포의 본질적인 상황은 바로 2, 3차 사격이다. 비무장 시위대에 집단발포를 자행하고, 이들이 쓰러지자 병원에 후송하기 위해 뛰어든 사람들에게 조준사격을 가한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행위다
- 끝 -
518 재단측의 이 발표가 바로 11여단 4지역대 65명이 유일하게 실탄을 지급받고 수협빌딩 옥상에 배치되어 오후 3시반부터 4시까지 30분간에 걸쳐 400여발의 실탄으로 군중속에서 비표시를 하고 군중을 선동하던 거동수상자 402명을 한명 한명 조준사격으로 사살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시신들은 얼굴에 하얀 페인트 칠을 두껍게 해 신원파악을 못하게 한 상태로 청소차에 25구씩 실려서 수십대가 어디론가 향하는 사진으로 타임지 표지에 실리기도 했었는데, 그때 시신 상태는 손발이 전혀 부패되지 않았기 때문에 영상에서 보시는 것 처럼 518 재단이 22일 오후3시8분 서울서 온 대학생 500명 환영식이란 기록이 바로 이 시신들을 처리하는 의식을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이고, 그 행사가 끝나고 청소차로 실어 청주로 보냈던 것 입니다.
청주에서 발견된 시신은 정확히 430구로 시신 한구 한구를 널판지에 올려 놓고 옷을 전부 벗긴다음에 영상에서 보시는 것 처럼 비닐로 칭칭감아서 놓고, 그런 시신 25구씩을 또 큰 비닐로 묶어 한군데 집단 매장을 했는데, 이것은 광주에서 시신을 운구해 온 다음에 청주에서 진행한 행위라 반드시 조사가 되어야 합니다. (28구는 교도소 습격을 하다가 사살된 연고대생들 입니다.)
만일, 이 시신들이 광주 시민들이었다면 유족이 있기에 시신 얼굴에 페인트 칠을 할 수가 없고, 정부가 공식 발표 한 21일 61명의 사망자는 사망시간과 사망장소 사망원인이 모두 다르고 집단 발포 시간과 장소와 전혀 관계가 없는 점, 그리고 조사를 받았던 대대장급 이상은 사격 현장에는 없었고, 실제 사격을 지휘하고 명령을 내린 신동국 중위는 단 한차례 조사도 없었고, 과학적 조사를 한다면서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만 데려다가 61명의 사망자를 이리 맞추고 저리 맞춰 조작 발표를 했지만 번번이 반박을 당했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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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 저렇게 속여서 돈을 타내고 자리를 빼앗고 해 호의호식하는 것 보고만 있는 개돼지들이 원수네 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