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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잔혹한 진압 7공수 지휘관은 망월동 3번 무연고 시신

최종 수정일: 4일 전



518 광주 전쟁이 일어난 원인은 계엄군이었던 7공수의 잔혹한 진압 때문이라고 518 빨갱이들이 45년간 선전선동을 하고 있고, 모든 기록은 이를 당연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잔혹한 진압을 했던 7공수 현장 지휘관이 북한군 장교였고, 그 사실을 7공수에서는 전교사 청죽회 장군들과 함께 국민들을 속이고 있었는데, 사기 소설가 한강이 소년이 온다고 했던 그 소년들이 당시 거금인 10만원씩 받고 소년 용병이 되어 집으로 가다가 7공수 최연안 소위에게 잡혀 모든 사실이 확인되었고, 3명의 소년들은 집에가서 돈을 전해주고 도청에 가서 그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전교사 청죽회 장군들은 7공수 최연안 소위를 죽여 입을 막는 작전을 세웠고 다음 날 도청 재진입 작전 때 광주 공원으로 진입하는 임무를 띤 최연안 소위와 한팀이었던 모 하사를 쏴 죽이려다가 오인사격을 해 최연안 소위가 아닌 박대위라는 장교를 쏴 죽이고 오인사격을 한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최연안 소위와 모 하사를 저격을 했는데, 최연안 소위는 현장에서 이마를 저격당해 즉사했고, 모하사는 간신히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날 긴박한 상황에서 전투교육사령부에서는 언론에 전사자 발표를 사실 그대로 2명을 발표헸는데, 그 전사자가 최연안 소위와 박대위 2명이었지만, 전사자 발표에서는 최연안 소위만 있었습니다.


당시 7공수가 광주공원에서 2명이 전사했던 이 사실은 모든 기록에 남아있지만, 전사자 명단에는 오직 최연안 소위만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박대위는 북한군이었기에 동작동 518 묘역에 안장이 안되어 전사자 명단에서 제외해 놓고 망월동에 암매장을 했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청주가 아닌 망월동에 암매장된 것은, 이미 23일 오전 10시에 전남도청에서 쓰레기차에 430구의 북한군 시신이 청주로 떠난 다음이었기에 24일 죽은 2명과 27일 죽은 1명은 그대로 망월동에 암매장 했던 것인데, 그 와중에 1명의 북한군은 광주시청 보상과에서 누군가 보상금을 뻬먹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걸 빨리 헌법 정신에 넣어서 518 전쟁의 진실을 대대로 자자손손 영원히 기록해 국민들이 치를 떨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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