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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을 특별 우대했던 518 광주 반란



이 사진은 한국일보 기자가 1980.5.22 광천 경철서 역전 파출소 앞에서 오후 3~5 시경에 찍은 사진 입니다.


그림자가 길게 느리워진 것을 보면 늦은 오후가 맞는 것인데, 군복을 입고 철모를 쓰고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특전사가 체포했던 시위대 중에서 북한군을 따로 분류해 놓고 도청이 점령된 21일 밤에 이을설 중장의 지시로 학생수습위원회를 구성해 22일 오전 10시 전교사를 방문해 석방을 결정받은 34명이 오후에 석방되어 버스를 타고 도청으로 가려고 하는 장면입니다.


이 34명의 존재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목포에서 33명이 별도 도청으로 진입을 했고, 그 기록은 22일 저녁 7시 40분에 최초 석방자 도청앞 도착이라는 조작을 해 알리바이를 만든 것입니다.


저 34명이 갱생원 소대라고 불리우는 특수부대였고, 이들중 8명이 교도대대로 차출되어 11여단을 공격했다가 1명이 전사해서 나중에 33소대라고 불리우기도 했었는데, 518은 툭한군만 특별히 우대해서 체포되어 석방된 자들을 한국군 철모와 군복 배낭 그리고 M16 소춍 1정씩 지급했습니다.


그리고 교도대대 조교로 위장했다 전사한 1명은 한국군이 아니므로 당연히 동작동 518 묘역에 안장이 안되므로 망월동에 암매장했고, 대신 지나가다 죽은 방위병을 전교사 소속으로 둔갑시켜 동작동 518 묘역에 안장해 비석 숫자를 맞춰 놓았던 것이고, 11여단 전사자들 공적 조서는 교도대대 조교들 오인사격으로 전사가 아닌 성명불상의 폭도에 의해 전사로 되어 있어 국방부는 처음부터 교도대대 조교들이 한국군이 아닌 북한군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공적조사에는 한국군 교도대대 조교가 아닌 성명불상의 폭도라고 교도대대 조교들의 표기 했던 것 입니다.


민주화? 그래 북한군 하고 같이 하는 게 민주화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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