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31사단 대위 전교사 소령은 체포해 조사를 해야 합니다.

1980년 5월21일 저녁은 광주시가 연고대생 600명 치하로 넘어간 시간인데, 광주 외곽 검문소 책임자 였다는 31사단 대위가 국제신문사 취재팀을 데리고 자기 하숙집으로 갔다고 하는데, 육참총장과 전교사령관등도 퇴근은 커녕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고 있는데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다음날 아침에 왔다는 전교사 소령도, 전교사 사령관이 교체되고, 광주가 함락되 정신없는 상태에서 한가하게 신문사 기자들을 만나서 노닥거릴 시간이 있나요?


바로 그 시간에는 광주 시내와 도청앞에서는 총을든 시민들이 득시글하고 죽은 사람을 찾아 다니고 시신을 놓고 통곡을 하고, 도청 앞에서도 총을 든 사람들이 사람을 잡으러 다니고 즉결 처형을 하는데, 거길 경상도 기자가 지리도 모르면서 광주시내를 관통해 도청 정문으로 가서 정문을 그냥 통과할수 있었을까요?


그걸 전교사 소령이 해 냈다는 것은 그 소령은 이을설과 연락을 전담하던 연락책의 끄나풀이었기에 특별 통행증과 특수암호를 조갑제에게 건네주었고, 다른 기자들은 못들어 가게 한 겁니다.


그걸 소지한 조갑제는 총을 든 시민들이 득시글 거리는 속을 경상도 기자로서 당당히 걸어서 6중 경비망이 쳐진 도청에 들어가 이을설을 만난 것입니다.


장갑차가 질주하고 무장한 시민들이 탄 차량이 질주를 하고 식구들 생사를 하기 위해 울부짖는 인파로 넘치는 도청앞에서 경상도 기자가 무슨 재주로 그 인파를 헤치고 정문까지 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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