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와 북한군 소대의 사라진 하루 그날은 바로 22일



1980년 5월22일 광주는 북한군의 치하에 놓이게 된 첫날이었고, 이날 광주에 들어갔던 조갑제는 자신은 23일 광주에 들어 갔다고 하면서 하루를 뺏고, 한국군 군복을 지급받고 석방된 북한군 소대도 23일 저녁 7시경 도청에 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군 소대는 20사단 연대장이 아예 의도적으로 목포 33인이라고 보고서에 기재를 했고, 518 재단은 최초 석방자 33인 도청에 도착 이렇게 기재를 해서 혼동을 주고 있지만, 실제로 이들은 34명이었고, 이들에게 M16소총을 지급한 전교사도 상황일지에 34정의 M16이 분실되었다고 기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석방을 주선했던 학생수습위원회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아예 학생수습위원회 발족을 시민수습위원회 발족 다음으로 전부 기록을 조작까지 해 놓고 있지만, 이미 과거 기록을 다 갖고 있기에 더 의혹만 불러 올 어리석은 행위라고 할 것 입니다.


이들이 한국군 군복과 소총과 수류탄 대검을 착용하고 한국군과 북한군 사이를 오가면서 저질렀던 특수작전들 중 하나가 바로 교도대대로 위장해 11여단을 공격해 1개 대대 병력을 괴멸시키다 시피한 사건이었고, 이때 특전사에게 사살 당한 1명이 동작동 28묘역에 묘소를 만들어 놓지 못해 결국은 들통이 난 것입니다.


국방부는 이 당시 특전사를 공격하다 전사한 1명과 생포당한 7명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군대는 당시 기록을 상당하게 많은 수단으로 보존하게 되어 있는데,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북한군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조치 일 뿐입니다.


이래도 518때 광주에 북한군이 오지 않았다고 잡아 뗄수있습니까? 이미 5월 18일 서울에도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빨간 티셔츠를 입은 북한군 2명이 수경사 헌병들 틈에서 힌츠페터를 호위하는 영상을 올려 드렸는데, 광주에서 현장을 잡힌 북한군은 잡아 뗀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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