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광주 목포의 모르스 통신 그리고 특전사와 518 재단




1980년 5월 20일 오후 2시 용산역으로 20사단 지휘부 차량들이 용산역에 집결하라는 명령이 내렸졌고 광주에서는 이을설 북한군 중장이 1980년 5월20일 2시에 군분교 점령작전 실시 명령을 내렸고, 목포에서는 군용 5톤 렉카차와 2.5톤 카고트럭 그리고 사제 트럭 한대가 나주에서 강탈한 무기들을 싣고 오후 2시에 광주로 출발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서울 용산에서는 20사단 지휘 차량들이 열차편으로 광주로 후송되기 위해 집결을 하는 것인데, 광주에서는 그 시간에 20사단 지휘 차량들이 열차편이 아닌 육로를 이용해 광주로 오는 것을 사전에 알고 그 통과로인 군분교를 점령하고, 장애물을 설치하고 아시아 자동차 진입로 4군데 중 3군데 절개 절단 작업을 시작했고, 목포에서는 이을설 부대의 선도차량이 목포 광주 도로 진입로에서 대기한다는 연락을 받고 목포를 출발할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 입니다.


서울에는 이종찬 중앙정보부 차장이 광주에서는 전투교육사령부 사령관이 목포에서는 김대중 사조직 책임자가 각각 모르스 통신을 해서 정보를 공유해 특전사를 도청앞에 포위 감금해 섬멸할 준비를 철저하게 했던 것 입니다.


그리고, 특전사는 광주시민들에 대한 과격한 진압은 했어도 사람을 살해한 사실이 없음에도 죽이지도 않은 임산부를 죽였다고 덤탱이를 씌우고 꼬마 상주 아빠도 특전사 저격병이 죽였다고 뒤집어 씌우면서도 정작 특전사가 사살했다는 교도대대 병사 1명은 죽은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위 2가지 사안을 아무리 518 재단이 부인을 하려고 재간을 부려도 빼도 박도 못하는 사안들이고, 이것은 전투교육사령부가 북한군 이을설 중장의 작전 지시를 받고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이면서 교도대대 전사자가 북한군이라서 국립묘지에 안장을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 입니다. 518은 전투교육사령부와 북한군 이을설 중장의 합동 군사반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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