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선태는 518 조사 위원장이 아니라 김대중 여단 반란군 조사 대상자



현재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송선태는 실상은 조사 대상자에 불과 합니다.


반란군으로 계엄권한을 쥐고 있던 전투교육사령부가 전권을 쥐고 김대중 여단 반란군 4,000명을, 선동선전에 속아서 총을 든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군으로 만들어 단순 가담으로 처리한 무리속에 송선태가 들어가 있었지만, 송선태는 김대중 여단 반란군의 주요한 가담자로 44군데 무기고 습격 계획을 세웠던 자 입니다.


이을설의 부대가 군분교 점령작전을 할 당시에, 군분교를 점령하고 군분교를 차단 장애물을 설치하고, 군분교에서 톨 게이트까지 1킬로가량 거리에 아스팔트를 뜯어내고 원목더미를 쌓아 놓거나, 불탄 자동차를 갖다 놓거나 콘크리트 수도관을 갖다 놓는 장애물을 설치하고, 아시아 자동차 4군데 진입로 중 3군데 진입로를 8시간만에 탱크나 장갑차가 통과하지 못하게 깊고 넓게 도로를 파 절개 절단을 했고, 아시아 자동차 납품대기 차량 400여대에 바퀴에 바람을 넣고 냉각수를 채우고 엔진오일을 넣고 배터리를 연결하는 출동 준비를 해서 이을설 부대가 출동을 하도록 작전 행동을 한 부대가 바로 김대중 여단 반란군들입니다.


그리고, 이을설 부대원 300명이 김대중 여단 반란군들이 장애물을 설치해 20사단 지휘부 인솔 차량중 선두 차량 14대만 차단해 기습을 할 때 박수부대로 20사단 지휘부 차량 요원들을 유인하고 북한군 300명을 그들 뒤에 숨겨 주었던 병력도 전부다 김대중 여단 반란군이었습니다.


이을설 부대원 600명이 차량 400여대를 강탈해 17개 시군읍 44군데 무기고를 향해서 갔을 때, 김대중 여단 반란군들은 44군데 무기고 관리 책임자들과 공모해 미리 무기를 꺼내 놓고 탑재 대기를 하고 있다가 이을설 부대원들이 차량을 몰고 오자, 즉각 김대중 반란군들은 꺼내 놓은 무기를 그 차량에 탑재해 신속하게 광주로 진입을 했던 것을, 지만원 같은 사람들이 북한군이 했다고 발표를 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되었지만, 실제로는 김대중 여단 반란군이 저지른 것입니다.


간단하게 계산만 해봐도, 400여대 차량이 44군데 무기고로 떠났다면, 한군데 무기고에 9대 정도가 도착을 했는데, 운전병 빼고 탑승자 9명이 무기고를 습격하고 무기를 꺼내고 신속하게 탑재하는게 가능하겠습니까? 만약 무기고 관리자와 경비병들이 반항을 했다면 단 한명이라도 살상자가 발생을 했을 것은 뻔하고 시간을 끌었을 것인데,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이게 바로 송선태가 5월 18일 이전, 사전에 작전계획을 세워 놓고 전투교육사령부와 모의해 44군데 무기고 관리자들에게 명령을 내려놓았고, 김대중 여단 반란군들이 작전을 했던 것이라 단한명의 살상자도 발생하지 않고, 이을설 부대원들 차량이 도착하자 마자 꺼내 놓은 무기를 탑재해 광주로 신속하게 진입을 했던 것이고, 그 시각에는 20사단 1개 사단 병력이 있었지만, 전투교육사령부는 광주 진입로를 차단하지 않았다는 게 명명백백한 그 증거입니다.


송선태가 세운 무기고 습격 작전 계획서에 의해서 군분교 점령 작전에 동원되었던 광주 시민들 수십명이 학살 암매장 되었으며, 광주시내에서 벌어졌던 양동작전인 차량시위로 수십명의 광주시민들과 계엄군들이 학살되었는데, 송선태는 조사 대상자가 되어서 이 사실에 대한 조사를 받아야만 합니다.


송선태가 세웠던 무기고 습격 작전계획서는 광주 형사들에 의해 압수되었으나 이 계획서가 경찰에 그냥 보관되어 있는지 또는 전교사 헌병대로 넘어가 소각되었는지는 불분명하나, 송선태가 체포될때 그 계획서가 형사들에 의해 압수된 것은 명확합니다.


조사 대상자가 조사 위원장이 되어서, 극히 일부만 드러난 아시아 자동차 습격사건과 시간을 조작한 도청앞 집단발포 사건 그리고 헬기 사격 조작 사건을 조사과제로 국고를 들여서 조작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을 할 수가 없는 사안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일빌딩 탄흔 감정서는 박근혜 제거 테블릿 난수방송이 공작원 21호에게 지령되기 하루 전날 국과수에서 발행을 한 것인데, 이 부분은 문재인이 개입되어 있고 북한이 그 당시에 홍석현을 부탄으로 불러서 직접 부탄에서 지령을 내린 사항이라, 송선태의 무기고 습격계획서 와는 별건으로 처리 할 것 입니다.


이제 우익의 막강한 정보전력들이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조사를 하는 16개 사항에 대하여, 당시 참전자들을 중심으로 대응을 해서 518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고, 42년 동안 동작동 국립묘지에 북한군 대신 묘지를 대신했던 방위병 소속 조작사건을 밝혀 북한군의 실체를 법적으로 확인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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