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대대로 위장한 북한군 분대는 공격지점인 도로 좌우로 연고대생 50명씩 M1소총을 소지하게 하여 저격병으로 배치를 했고, 매복장소로 11여단 병력을 유인한 안내장교는 북한제 권총을 착용했던 북한군으로 11여단 병력이 추적을 하자 산으로 도주해 체포되게 되자 권총으로 자살을 했는데 그 권총이 북한제 권총이었다고 참전 장병들은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매복을 한 북한군은 소총을 사용하지 않고 90밀리 무반동총 4발을 사격해 선두 장갑차와 카고트럭을 직사해 특전사 11여단 8명 전교사 장갑차 운전병 1명을 현장에서 즉사하게 하였고, 이후 무수한 수류탄을 투척을 해 공격받은 트럭에 탄 장병들이 피신하지 못하게 해 38명을 중상에 이르게 했습니다.
북한군들이 11여단에게 공격을 하는 동안, 도로 좌우측에 매복을 해 있었던 연고대생이 50명씩 100명이 특전사 대원들에게 M1 소총으로 저격을 해 북한군을 공격하지 못하게 엄호를 했지만, 11여단 병력은 공격을 가한 북한군에게 집중사격을 가했고, 안내했던 안내장교를 추적했으며, 저격을 하는 매복 병력에 대응사격을 가하면서 추적을 시작했습니다.
11여단 병력이 매복한 북한군을 공격하자 이들은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고, 1명은 사살되고 7명이 체포된 것이며, 도로 양쪽으로 매복을 했던 100여명의 연고대생들은 특전사 병력들이 대응사격을 하면서 쳐 들어가자 모두 도주를 했고, 안내장교 역할을 했던 한국군 육군 소령 복장의 괴한은 산으로 도주하다 체포가 되게 되자 권총으로 자살을 했는데, 그 권총이 북한제 권총이었다고 추적을 한 장병들은 증언을 한 바가 있었습니다.
지휘권을 갖고 있던 전교사는 전권으로 조사를 한다고 헌병대를 동원해 체포된 북한군을 인계받고, 특전사 지휘관들에게 합동조사를 한다고 소집해 놓고 사태를 오인사격으로 몰고 간 것인데, 그때 전사했던 한국군 교도대대로 위장했던 전사자가 동작동 518 묘역에 묘지가 없어 조작한 작전 내용이 들통이 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당시 참전을 했던 11여단 장병들을 재소집해 재조사를 실시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렇게 사건을 조작한 518측은 그 당시 대응사격을 희생된 주민들을 특전사 학살로 몰고 가면서 전사를 순진으로 전환시키고 유공자 자격마저 박탈을 한 상황으로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518 첫 사건인 아시아 자동차 기습 사건부터 보고를 기피하고 아시아 자동차 신고를 묵살하고, 나주 예비군 무기고 강탈사건도 보고를 기피하고, 여장 지휘관 이을설의 군분교 점령작전에는 적극적 가담을 했고, 체포했던 연고대생들을 환자를 가장해 통합병원으로 빼 돌렸고, 수습위원들과 짜고 석방을 해 줘서 여장 지휘관 이을설이 24일 송암동에서 특전사를 공격하게 할 수 있도록 한 혐의와 어떻게 군번이 없는 사람들이 교도대대로 전투에 참가를 했는지를 당장 조사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출근중 사망한 방위병을 같은 묘지에 안장해 교도대 전사자로 위장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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