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찰 납치 고문 사건 해결의 주인공은 문희상 4차장


문희상안기부기조실장

1998년 5월 19일 ~ 1999년 1월 (안기부) 1999년 1월 ~ 1999년 6월 4일(국정원)

▲경기 의정부(53) ▲서울대법대 ▲도서출판 숭문당 대표 ▲한국JC

중앙회장 ▲민주연합청년동지회중앙회장 ▲14대의원 ▲민주당대표비서실

장 ▲국민회의 기획조정실장 ▲국민회의총재특보단장 ▲국민회의 의정부

지구당위원장 ▲청와대정무수석

이종찬 국정원장이 북한 경찰을 중국서 강제로 납치 해 왔고, 천용택 국정원장이 중국 정보부와 사건 해결을 끝냈지만, 그 해결은 바로 국정원 4차장이었던 문희상 입니다.


각종 자료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최인수가 중앙일보사로 도주했고, 다시 국정원으로 신병이 확보 된 직후, 일본 정보부는 이 사실을 탐지해 일본 정부에 통보했고, 일본 정부는 막후에서 김대중 정부를 압박해 그 동안 지지부지했던 신한일어업 협정을 6개월만에 협정체결과 공포 국회동의까지 끝내게 되는데, 이 직후 국정원은 북한 경찰 최인수가 중국으로 비밀리에 되돌려 보냅니다.


이때 최인수가 요구한대로 한국인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주고, 미화 10만달러를 지참케 해주었다는 제보내용이 있었고, 최인수가 중국에서 중국 정보부에 체포 될 당시 이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미화 10만달러가 최인수에게 주어진 것은 당시 4차장이었던 문희상의 개입이 확실하고, 문희상 도 이 사건에 중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후일, 최인수가 중국 정보부에 체포된 후 고문을 받고 사실 자백을 한 후, 북한으로 압송되는데, 북한은 최인수를 다시 고문해 더 많은 세세한 정보를 캔 다음에 최인수를 처형했고, 김대중에게 방북을 요청하면서 부터, 국정원 1차장도 개입을 하게 됩니다.

조회수 4회댓글 1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취임식 도중 쪽지로 보고를 받은 천용택 원장은 즉각 중국으로 날아가 10여일간 교섭 끝에 간첩으로 몰려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 있던 직원 전원을 데리고 귀국을 했지만, 공짜로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고, 무엇을 중국에 주었길래 중국이 사형에 처한다

김대중여단 반란군과 민주당에 있는 민주연구원은 둘 다 김대중에 의해 만들어진 반국가 단체입니다. 김대중여단 반란군은 김대중이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이후 혁명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기 위해 조직한 반란을 목적으로 한 군사조직으로서 518 군사반란에 주력 작전부대 였었고, 민주당의 민주연구원은 김대중이 정권을 잡고 장기 집권을 하기 위해 총풍사건을 조작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