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찰고문사건 담당기자 이철호 기사


Opinion :이철호의 시시각각

‘어이리스’

중앙일보

업데이트 2011.02.24 00:11










이철호 논설위원


이젠 충분한 시간이 흘렀으니 공개해도 무방할 듯싶다. 김대중 정부 초기인 1998년 7월 16일 중앙일보에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마감이 끝난 새벽 2시쯤 슬리퍼에 속옷 차림의 40대 남자가 피를 흘리며 편집국으로 뛰어들어왔다. “살려달라. 안기부(옛 국정원)의 고문을 받았다.” 밤샘 중이던 사회부 야근기자는 깜짝 놀라 비상연락망을 가동시켰다. 편집국장의 지시로 외교안보 담당 기자가 뛰어나와 취재에 들어갔다. 그의 진술은 놀라웠다.


최인수라고 이름을 밝힌 그는 “북한사람인데 안기부에 납치돼 왔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선양(瀋陽)에서 북한 골동품을 남한에 밀수출하다 안기부에 포섭된 이중간첩. 몇 차례 거짓정보로 안기부를 괴롭히다 탈이 났다. “남한에 깔아놓은 골동품 외상값을 받아주겠다”는 유인에 넘어가 김포공항으로 들어온 것이다. 안기부 요원들이 안가(安家)로 끌고 갔다. 기대하던 알맹이 진술이 나오지 않자 고문까지 했다.


황당한 것은 그 다음부터다. 안기부는 며칠간의 조사 끝에 “잘못 낚아왔다”는 판단을 내렸다. 7월 15일 밤에는 요원들이 단체로 저녁회식을 나가며 자리를 비웠다. 감시는커녕 몸을 묶지도 문을 잠그지도 않았다. 나사가 풀린 것이다. 최씨는 그 틈을 타 안가를 탈출해 택시를 잡아탔다. 처음엔 무작정 야당인 여의도 한나라당사로 갔다가 경비 중인 경찰에 기겁해 중앙일보로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기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날이 밝자 안기부에 “밤새 잃어버린 사람 없느냐”고 확인했다. 전화선 너머로 “있다. 혹시 그곳에 있느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이후 중앙일보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보도를 하느냐, 마느냐…. 정보기관의 잘못된 공작과 고문이라는 희대의 특종이 손안에 들어왔다. 하지만 엄청난 국익이 걸린 문제였다. 안기부가 중국 땅에서 북한인을 불법 납치했다는 기사가 나가는 순간 남북 관계와 한·중 관계는 끝장날 게 뻔했다.


중앙일보는 최씨의 최종 입장을 확인했다. “보도되기를 원하느냐?” 그는 “비공개로 안전하게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심각한 회의 끝에 결국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안기부로부터 두 가지 다짐을 받았다. 첫째, 살기 위해 중앙일보로 온 만큼 확실하게 신변보장을 하라. 둘째, 연루된 요원들을 문책하라. 안기부는 이 조건을 수락하고서야 그의 신병을 인수해갔다. 나중에 최씨는 중국으로 몰래 돌려보내진 것으로 확인됐으나 그 이후 소식은 끊겼다. 안기부 7국은 해체되고 책임자는 다음해 옷을 벗었다.


국가정보원의 인도네시아 특사 절도 미수 사건은 완전 코미디다. 첩보드라마 ‘아이리스’가 어이없다는 ‘어이리스(less)’로 제목을 바꿔 달아야 할 판이다. 복수의 전직 국정원 고위 관계자들은 “현장에 투입된 ‘산업보안단’이 문제”라며 혀를 찼다. 국내 대기업을 주로 상대하는 갑(甲)의 위치라서 음지보다 양지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비밀작전 기본기가 한참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안방이나 다름없는 호텔이라 방심한 것도 문제다. 국정원은 “바로 위 2061호가 우리 기관이 쓰는 방”이라 공개했다. 국정원장 안가도 부근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관계자들이 걱정하는 대목은 따로 있다. “항상 실수는 있을 수 있다. 이번엔 시간이 충분한데도 덮지 못한 게 더 문제”라 했다. 황장엽씨 망명까지 성사시킨 뛰어난 조직이 지역·파벌 갈등으로 무력화됐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부 승진자인 김만복 전 원장마저 죽을 쒀 마땅한 대안도 없다. 이들은 “우리가 미국 CIA를 통째로 베꼈지만 결정적인 하나를 놓쳤다”고 아쉬워했다. 바로 대통령 측근을 스파이 수장에 앉히지 않는 미국의 불문율(不文律)이다. 미국은 반대 당이 임명한 초당파적 CIA 국장을 연임시키는 경우도 흔하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인 인도네시아가 “문제 없다”고 무마하면서 코미디의 완결판을 보는 느낌이다. 중앙일보는 13년 전 대특종을 덮은 것을 별로 후회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이 요즘처럼 흔들린 적이 없다. 정말 ‘어이리스’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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