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7.16 안기부에서 고문을 받던 북한 경찰 최인수는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서 중앙일보사로 도주했고, 사실을 확인한 홍석현 회장은 안기부에 이를 밀고하여 최인수를 다시 안기부로 압송하게 했으며, 이건희에게 이를 알려 이건희는 일본 정부에 밀고를 했습니다.
이때 까지는 중국 정보부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몰랐고, 이건희를 통해 이런 한국의 기밀을 탐지한 일본 정부는 즉각 한국 정부에 이 사실을 통보해 압박을 했으며, 김대중은 즉각 오부치와 회감을 갖고 일본정부의 숙원 사업이었던 신어업협정을 6개월 만에 국회비준까지 끝내주었지만, 그때까지도 중국 정보부는 이런 한일간의 비밀 내막을 까맣게 몰랐던 것입니다.
일단 일본 정부의 압박에서 벗어난 김대중은 518 군사반란때 정보부 차장으로 자신을 끝까지 보살펴준 이종찬에게 공작실패 책임을 물어 해임을 하고 그 후임에는 같은 청죽회 소속인 천용택을 국정원장으로 임명했는데, 임동원이 취임식을 하는 중에 중국 정보부는 중국으로 돌아와 한국 주민등록증을 소지하고 한국여권을 사용하면서 돈을 물쓰듯 하던 북한 경찰 최인수를 체포해 고문을 가해 모든 사실을 알아낸 후, 취임식을 시작하자 마자 즉각 중국내에서 암약중인 국정원 직원들과 정보사 요원들을 전원 체포 구속했고, 안기부 요원들은 취임식 중인 천용택 신임 원장에게 이 사실을 즉각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취임식 도중 쪽지로 보고를 받은 천용택 원장은 즉각 중국으로 날아가 10여일간 교섭 끝에 간첩으로 몰려 사형에 처해질 위기에 있던 직원 전원을 데리고 귀국을 했지만, 공짜로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고, 무엇을 중국에 주었길래 중국이 사형에 처한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국정원 직원 30여명을 전원 석방했을까요?
당연히 천용택과 중국 정보부 협상 당사자만 아는 비밀이겠지만, 그 당시 한국에는 국정원이 갖고 있는 정치정보주권을 중국에게 줬다는 설이 파다했고, 현재 국정원은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고 있고, 법으로 완전 금지되어 있음 볼 때 틀림이 없는 사실이며, 국정원이 못하는 정치정보 권리 행사를 중국 정보부가 하면서 그 임무집행은 바로 그때 김대중이 만들었던 국가경영전략 연구소 내부에 비밀조직이 하면서 현재의 민주 연구원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중국 정보부가 기획한 언론세무 사찰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실시해 한국의 모든 언론이 중국 정보부 손아귀에 들어가 있게 된 것이고, 언론보도 행태가 중국과 흡사하게 된 것을 눈치가 빠르신 분들은 감을 잡으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국가경영전략 연구소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 해드렸습니다.
민주당은 반드시 해체해야 하고, 당원들은 모두 반역혐의로 사법처리 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