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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정 담

동작동 국립묘지 시신 바꿔치기와 묘지 바꿔치기의 엄청난 국가 1급 비밀

동작동 국립묘지 518 묘역에는 2명의 전투교육사령부 전사자 묘소가 있습니다. 당연히 기록상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실제로는 518 군사반란 이후의 역대 정부가 모두 다 해체되어야 하는 엄청난 국가 1급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1980년 5월24일 광주 송암동에서 특전사 11여단과 전투교육사령부 보병학교 교도대대가 오인사격 사건으로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정부의 발표로 다 아실 것이고,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바로 전교사 소속 교도대대 조교 1명이 전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전교사 장병이 전사를 했는데, 그 전사자는 전교사 소속이지만 운전병 보직으로 11여단 63대대장의 탑승한 장갑차를 운전하다가 같은 전교사 교도대대 매복조가 발사한 90밀리 무반동 총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했습니다.



이상과 같이 공식적인 전투상보 기록에서 전투교육사령부 소속 장병 2명이 1980.5.24 오후 2시경 광주 송암동 오인사격 사건에서 전사했음을 확인하실 수가 있습니다.


전교사 수송부 이병택 하사가 전사후 1계급 특진이 되어서 안장되어 있습니다.


전교사 소속 병사 1명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이상과 같이 묘비와 무덤을 확인해 보면 전투교육사령부 소속 전사자 2명은 모두 동작동 국립묘지 518 묘역에 나란히 안장되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바로 손광식 일병은 전교사 소속도 아니고, 특히 전투교육사령부 교도대대 조교 전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교사 소속으로 44년간 정부와 518 기념재단과 현재 업무중인 518 진상규명조사 위원회가 기가 막히게 국민들은 속이고 있는 엄청난 사실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손광식은 광주통합병원 소속의 방위병이었고, 1980년 5월22일 오후 5시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한 후 바로 그 시간에 벌어졌던 20사단 통합병원 수복작전에 휘말려 통합병원 인근에서 시민군 총에 맞아 사망을 했는데, 광주 통합병원은 광주에 소재하고 있었지만 전투교육사령부 소속이 아니며, 손광식은 사망 당시 절대로 소속이 전투교육사령부가 될 수가 없습니다.



당시 광주계엄사령부인 전교사의 발표를 인용했던 언론 보도를 보면, 전교사 방위병으로 묘사되어 있고 화정동에서 사망했다고 하는데, 광주 통합병원이 화정동에 있었고, 사망 진단서에는 M16실탄이 적출되었다고 되어 있지만, 원래 적출된 탄환은 카빈탄환이었는데 위 기사에서도 과격분자가 발사한 총탄에 사망이라고 되어 있어 손광식은 교도대대 조교로 오인사격 사건에 참가했던 전투교육사령부 보병학교 교도대대 장병이 아닌 것만은 명백합니다.


그렇다면 전투교육사령부 보병학교 교도대대 조교 신분으로 11여단을 공격하다가 11여단 총에 맞아 죽은 전투교육사령부 보병학교 교도대대 조교의 시신은 어디에 있을까요?


전투교육사령부 보병학교 교도대대 조교 신분으로 전사한 장병은 동작동 518 국립묘지에 안장될수가 없는 신분의 전사자이기 때문에 동작동 518 국립묘지가 아닌 광주 망월동 묘지에 암매장이되었습니다.


먼저, 일반 육군 보병인 교도대대 조교 8명과 선임하사 1명 인솔 장교 대위 1명 총 10명이 완전무장을 하고 장갑차 3대를 선두에 세우고 차량행군을 하는 정예 특전사 병력 1천여명을 공격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군사 전략가 또는 군사 전문가들은 단 1명도 없습니다.


오히려, 정예 특전사 병력도 단 10명이서 일반 육군병사 1천명을 공격하지 못하며, 전세계 어는 나라 특수부대도 10명이서 대낮에 완전무장하고 장갑차를 앞세운 1천명의 병력을 공격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특수부대도 아니며 전투병력도 아닌 일반 교육병 조교들인 전교사 예하 보병학교 조교들 8명이서 대한민국 최정예 육군 특전사 11여단 전병력이 기동을 하는데 공격을 했는데, 그 진실은 이렇습니다.



1980년 5월22일 오후 5시경 광천경찰서 역전파출소에서 한국군 군복을 입고 석방되는 북한군들


1980년 5월21일 저녁 도청을 점령한 이을설 시민군 본부장은 즉각 통합병원 점령을 해 대기중인 북한군을 인솔해 올 것을 지시를 하고, 학생수습위원회를 조직할 것을 명하고, 다음날 오전 학생수습위원회가 전교사를 방문해 체포되었던 북한군을 석방해 오는 교섭 임무를 부여해 그날 오후에 석방된 34명의 북한군을 한국군 군복과 철모 배낭 탄티 그리고 M16 소총1정식 지급해 석방을 했는데, 소총은 별도로 도청으로 운송을 해 저 사진에는 없고, 경찰복을 입고 석방된 인원들은 도청에서 경찰역을 하면서 외신기자들 상대로 수습활동을 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자 들 입니다.


이들의 이런 비밀석방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목포에서 33명이 버스를 타고 광주로 진입을 하는데, 이때 20사단 송정리 검문소를 통과 할 때 전교사의 지시를 수상하게 여긴 20사단 연대장이 수기 메모로 이 사실이 확인되었던 것인데, 이들은 23일 저녁 7시에 도청에 도착했다고 518기념재단은 타임라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바로 저들 34명은 25일 갱생원 소대로 알려지게 되는데, 바로 저들 중 8명을 차출해서 보병학교 조교로 위장시켜 11여단에서 갓 전입온 대위가 인솔해 상황실에 보고도 없이 출동을 했는데, 그 시간에 전교사는 교전 장소인 매복장소의 작전 관할권을 20사단에서 교도대대로 전환을 시키는 치밀한 작전 준비를 해 놓고, 교전 장소에는 대전차 지뢰외 대인지뢰를 사전에 매설해 11여단 장병들이 상당수 현장에서 즉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저들 8명은 한국군 군복을 입었지만 실제 신분은 북한군이고, 그래서 교전중 11여단 장병들에 의해 전사한 전사자 1명은 동작동 국립묘지 518 묘역에 안장을 할 수가 없는 신분이라 11여단 장병들에 의해 사살된 전교사 장병의 무덤 숫자를 맞추기 위해서 바로 통합병원 방위병 사망자를 전교사 소속 병사로 위장 시켜 놓고서, 동작동 518 묘역에서 11여단 희생자 영결식을 할 때 11여단 장병들이 전교사 사망자 2명이 인근에 매장된 것 처럼 확인할 수 있게 국방부가 속였던 것입니다.


국립묘지에 매장을 하기 위해 전사자 유족들을 속인 국방부와 전교사


국방부와 전교사 그리고 육군본부와 특전사령부 그리고 11여단 사령부는 전사했던 전사들의 국립묘지 안장을 위해서 공적조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천인공로할 사기를 유족들과 국민들에게 친 것을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특전사 전사자들의 전사 이유를 적시한 공적 조서



11여단 장병들 공적조서에 의문을 표했던 당시 신문도보


국민들과 유족들에게는 분명히 교도대대 병력들과 오인사격으로 11여단 장병들이 전했다고 했는데, 이렇게 공적조서를 작성했다가 언젠가는 진실이 드러나게 될 경우 매장 당시 관련 공직자들이 후일 처벌을 받을 것을 대비해 “교도대대 조교들에 의한 오인사격 사망” 이렇게 적시를 하지 않고 “인적 불상의 폭도들에 의한 전사”로 표기를 했는데, 이 서류에 확인을 11여단 헌병대와 여단장이 확인을 한 사실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특히, 11여단장은 22일 오전 01경 김대중 여단 병력과 북한군에 의해 미군부대 아래서 포로가 되었으나, 이 시간이 바로 북한 문재심 상장이 영광 백수해안에 상륙해 광주로 진입하던 시간이라 실종된 여단장을 찾는 수색작전을 하게 되면 문재심 북한군 상장이 체포될 우려가 있어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이 이종찬이 전교사로 연락해 최웅 여단장을 석방하게 했는데, 그때 이미 포섭이 되었고, 그래서 행군 대열 선두을 선임대대인 61대대를 세우지 않고 62대대를 세워 수협빌딩에서 이을설 부대 412명을 사살한 보복을 하게 했었던 것인데, 중간에 사병의 부대 복귀가 늦어져 63대대가 선두 행군을 하게 되어 대대장이 팔이 날라가고 바로 전교사 운전병이 즉사했던 것입니다.


위와 같은 보도를 봤을 때 교도대대 조교들이 한국군이 아니라는 것은 당시 군 관련 책임자들은 다 알고 있었고, 교도대대 조교 전사자가 동작동 518 묘역에 안장이 안되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수가 있는 것입니다.


2. 이병택 하사 가족들이 교도대대 조교에게 전사했다는 것을 알았던 시기


국방부와 전교사는 11여단과 교도대대 오인사격이라고 발표했지만 폭도에게 사망했다고 적시함


11여단 장병들의 공적조서와 마찬가지로 전교사 전사자인 이병택 하사의 전사 기록에도 교도대대 조교들의 오인사격에 의한 사망이 아니라 “폭도로 추정”되는 자들에 의해 사망했다고 했는데, 폭도도 아니고 폭도로 추정되는 자라고 표현해 나중에 사건이 들통 났을 때를 대비해 저런 식으로 공적 조사를 작성했던 것입니다.



시민군과 교전으로 전사로 알다가 40년만에 전교사 소속과 교전으로 알았지만 이것도 사기…..


이병택 중사의 유족들은 사망 당시는 시민군과 교전으로 죽은 줄 알았다가 40년만에 전교사 소속 군인들과 오인 사격이란 것을 알았다는 것인데, 그게 전교사 소속 군인들이 북한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심정이 어떨지 기가 막힐 뿐입니다.




국방부와 전교사는 44년동안 국민들을 속여 왔지만, 43년만에 들통 난 후 태도를 다음 글에 공개하겠습니다.


북한군에게 희생된 송암동 전사자들을 속인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전라도 사람들로 구성된 518 진상규명 조사 위원회가 진실을 규명하는 국민을 공문서를 이용해 속이고, 일반 직원을 이용해 속이고, 조사4과장 등 간부들은 병원에 입원했다고 속이는 등 국가기관의 국가 공무원의 태도로 볼 수가 없는 기막힌 현실을 보시게 될 겁니다.


특히 군관계자와 518 기념재단은 전교사 교도대대 조교 무덤이 동작동 518 묘역에 없다는 민원제기에 그 동안 해 왔던 대로, 이병택 중사를 전교사 조교로 대답을 했다가 추궁 되자 모두 다 발뺌을 했는데, 44년동안 그렇게 하도록 교육을 받았던 정황이 의심이 되고 있습니다.


- 영상 등록은 내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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