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여단 4,000명 반란군은 시민군이 아닙니다.



518 군사반란 사건에서 시민군이라고 함은 이을설 부대 600명하고 김대중 여단 4,000명 반란군과 광주시민들을 다 합쳐서 말하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이을설 부대와 김대중 여단 4,000명 반란군이 자신들의 신분과 자신들의 작전형태를 숨기기 위해서 시민들 속에 숨어서 시민군이라고 선전을 했던 것 입니다.


전교사 장군들과 장병들은 군인이므로 별도로 파악이 되고, 이을설 부대는 부대 전멸 후 잔존병력이 모두 야반도주를 했지만, 김대중 여단 4,000명 반란군은 지금도 518 각종 단체에 핵심세력으로 남아서 전교사와 이을설 부대의 흔적을 지우면서 계엄군의 잔악한 진압이란 색칠을 하고 있기에 아직도 518 군사반란은 끝나지 않은 것 입니다.


이을설 중장의 군분교 점령작전은 전투교육사령부와 북한군 1,2전대 그리고 김대중 여단 병력이 합동으로 작전을 했고, 그중 김대중 여단 병력의 활약이 가장 중요했으며, 이 작전을 영상으로 담기 위해 힌츠페터가 서울서 내려와 정확하게 김대중 여단의 목포 별동대와 이을설 부대의 20사단 강탈 짚차가 접선하는 장소로 찾아가 극적인 장면을 영상으로 담았던 것 입니다.


군분교 점령작전에서 노인부녀자 공작대 300명은 20사단 연대병력의 광주시내 진입을 저지했고, 북한군 2전대 300명을 박수부대로 위장해 1,000여명이 그들 뒤로 숨겨 주었으며, 군분교에서 톨게이트까지 1킬로 가량 장애물 설치를 하면서 시내에서 각종 장애물을 날라다 주었고, 특히 아시아 자동차 진입로 3군데 절개절단 야간 전투공병 작업에서 동원했던 광주시민 수십명을 다 제거해 광주외곽에 암매장을 했었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또한, 광주시내에서는 외곽의 야전 전투공병작업을 숨기기 위한 양동작전인 차량시위에 택시를 동원하고 트럭과 버스를 동원하는 역할을 하면서 방송국과 세무서등의 방화 행위를 자행하는 등 반란군으로서 국가반란 행위를 자행했던 부대원들이 바로 김대중 여단 4,000명 반란군들이었고, 이들은 시민군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하며, 이들을 색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518 유공자 명단을 조사를 해서 가려 내야만 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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