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여단 반란군 4,000명의 44군데 무기고 방문과 무기 나눔 행사

최종 수정일: 10월 27일



김대중 여단은 김대중의 영향력이 작용했던 전라남도 17개 시군읍에서만 활동을 했는데, 김대중은 여수와 순천 지역에는 영향력이 없어서 여수 순천지역에는 김대중 여단 반란군이 활동을 못했었습니다.


여수 순천 지역을 제외한 17개 시군읍 44군데 무기고에 김대중 여단 반란군 병력들이 1980년 5월20일 오후 2시를 기해서 이을설 북한군 중장의 명령으로 군분교 점령작전이 발효되자 일제히 그리고 조용히 방문을 해서 사전에 계획된 대로 무기고 문을 열고 무기와 탄약과 폭발물을 꺼내 놓고 이을설 부대원들이 몰고 올 아시아 자동차에서 강탈한 군용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을설의 군분교 점령작전이 발효되자 즉각 서울에 있는 힌츠페터에게 출동명령이 내려서 서울에서 정확하게 목표 별동대와 북한군 짚차가 접선을 하는 장소를 찾아 6.25때 빨치산이 이용했던 도로를 통해 도착해 북한군 짚차가 칸보이하는 목포 별동대의 행군 장면을 촬영해 북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이런 작계 80518에 의하여 철저히 계획된 작전 명령 수행을 “북한군이 했다” “시민들이 했다” 이렇게 선동을 해서 42년 동안 국민들을 철저하게 속여왔는데, 안 속을 국민들이 어디에 있을까요?


44군데 무기고 방문과 무기나눔 행사를 북한군 기습 또는 시민과 도민 또는 시민군들 했다고 국민들을 속여왔던 무리들이 누구였나를 국민들은 똑똑히 세세히 빠짐없이 찾아 내야만 할 것이며, 김대중 여단 반란군 4천명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색출해 내야만 518 군사반란이 청산이 된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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