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여단 반란군 100명의 교도대대 지원 작전은 왜 누락했나



518 진조위에서 11여단이 주남마을에서 주민들을 학살했다고 떠들어 대면서 이 학살사건을 밝히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1980.5.24일 전교사 장성들이 북한군에게 한국군 군복을 입혀서 교도대대로 위장을 시킨 후 오인사격이란 작전으로 11여단을 공격했을 때 교도대대로 위장한 북한군을 지원하기 위해 북한군 좌우측으로 김대중 여단 반란군 50명씩 모두 100명을 배치해 작전을 했었는데, 이 작전기록은 간첩 장성인 전교사 교수부장인 김병엽 준장의 재판기록에 그대로 다 나오는데, 전교사는 바로 이 김대중 여단 반란군 100명을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간첩장성 김병엽은 21일 오후 3시30분부터 4시까지 집단발포로 북한군 400여명을 금남로에서 전멸시킨 11여단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11여단 이동도로에 차량 정차 지점을 설정하고 미리 대인지뢰까지 매설해 놓고 차량에서 뛰어내리는 특전사 장병들이 지뢰를 밟고 대규모 피해를 유도한 치밀한 계획을 세워 11여단 장병들이 지뢰를 밟고 몸통이 절단되는 처참한 살상을 유도했었습니다.


또한 11여단 장병들이 교도대대로 위장한 북한군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북한군 좌우에 김대중 여단 100명을 배치해 11여단의 반격을 차단하도록 조치를 취했지만, 분노한 11여단의 반격으로 김대중 여단 반란군 100여명이 일부는 주남마을로 일부는 효천마을로 도주를 시작하자 이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양측부대의 거리가 멀어서 주남마을에서 총을 든 1명과 총을 숨기고 장기를 두던 3명 그리고 이들을 숨겨준 여자를 사살했는데, 이를 양민 학살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대전차 지뢰와 대인지뢰 수류탄 수십발과 무반동총 4발 그리고 실탄 수천발이 사격을 하는 아수라 장에서 장기를 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금부터 라도 교도대대로 위장한 북한군을 지원했던 김대중 여단 반란군 100명에 대한 조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왜 정부와 전투교육사령부 그리고 수차례 반복된 518 특조위와 현재 진조위는 김대중 여단 반란군에 대한 조사는 시작도 않고 양민 학살로 몰아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철저한 수사를 해서, 그동안 이 사건을 은폐했던 특조위와 진조위를 철저하게 엄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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