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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정 담

김대중 여단 반란군의 16가지 518 군사반란 -6호작전-



6. 20사단 지휘부 차량 14대를 기습해 아시아 자동차로 몰려 갔던 괴한들이 사단장 짚차 운전병과 장교 1명을 생포해 아시아 자동차 정문으로 끌고가 아시아 자동차 정문을 여는데 이용을 했는데, 그때 포로가 된 운전병은 25일 석방되었으나, 장교 1명은 석방되거나 귀환을 한 기록이 없는 바, 장교 1명과 운전병의 생포 당시 누가 이들을 수일간 어디에 감금을 했고, 어떤 대우를 했는지 그리고 장교 1명에 대한 행방여부를 조사를 해 주십시오,


20사단 지휘부 인솔차량 기습사건은 14대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30여대가 넘는 차량 행렬 중에서 14대만 차단을 하고 15호 차량부터는 다른 도로를 사용해서 전교사로 갔다는 설도 있는데 검찰도 지휘차량 14대라고 하지 않았고, 지휘부 인솔차량이라고 하였습니다.


일단, 운전병 1명이 포로가 되어서 25일 석방된 것은 확실하나, 소령 계급 장교 1명도 포로가 되어서 사단장 짚차에 선탑을 해 아시아 자동차 정문에서 정문을 열도록 하였다는 목격자들이 있는데, 이 소령의 행방이 불확실 합니다.


그러나, 운전병은 포로가 되었다가 개인 병원에 감금되었고, 이을설 부대가 철수를 한 다음인 25일 석방이 되었다는 것인데, 왜 이 병사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는지에 대하여 조사를 요청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 감금을 했는지 그리고 누가 감시를 했는지 어느 병원에 감금을 했는지, 그리고 아시아 자동차 정문을 열게 했을 때 상황을 조사를 했어야만 했는데 이 병사를 조사를 한 기록은 없습니다.


같은날, 특전사 운전병 1명은 도청 지하에서 김대중여단 반란군에게 살해 당했다는 설도 있는데, 사실확인을 아직 하지 못해 조사 요청은 못하고 있지만, 20사단 운전병 1명은 명확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적진에 포로가 되었다가 생환을 한 병사를 심문조차 하지 않았고, 계엄군을 생포해 감금한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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