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1980년 5월20일 오후 2시부터 다음날인 21일 오전 11시까지 광주시 소재 군분교를 누가 차단하고 누가 점령했으며, 누가 군분교에 장애물을 설치했으며, 누가 군분교에서 광주 톨게이트 방향으로 1킬로 거리에 불탄 자동차 원목더미 콘크리트 수도관 타이어로 장애물을 설치 했으며 중간 중간 아스팔트를 뜯어 냈으며, 왜 20사단 지휘부 차량이 30대 이상 용산역에서 전투교육사령부로 차량행군을 했는데, 왜 그 차량 대열에서 14대만 차단을 했는지, 그리고 14대 차량에 실려 있었던 음어낭에 있던 음어와 군작전 지도 20장 고성능 무전기 20여대가 어떤 경위로 지휘부 인솔차량 기습을 했던 자들에게 넘어 갔는지, 그리고 그때 강탈당한 M60 기관총 2정이 계엄군 헬기에 대공사격을 한 여부와 또 그때 강탈당한 M16 소총 4정이 시민군 본부가 있던 도청 정문에서 관리가 되던 사진이 있는바, 이 M16 소총이 임산부 사살 사건에 사용된 여부를 조사해 주십시오.
김대중 여단 반란군은 상기와 같은 군분교 점령작전을 실시했으며, 김대중 여단 병력은 600명 이상, 고정간첩들 300명, 이을설 부대 2전대 300명과 1전대 300명, 아시아 자동차 노조 그리고 전투교육사령부 지휘부가 참가한 대규모 작전이었습니다.
작전의 목적은 현 518 진상규명조사위원장 송선태가 기획한 44군데 무기고 무기 인수를 위해 아시아 자동차의 군용차량을 강탈하기 위한 작전으로서 이 작전을 은폐하기 위해서 이을설 북한군 중장과 전교사 그리고 김대중 여단 반란군은 시내에서 차량시위를 실시함과 동시에 관공서와 방송국 방화, 리어카 시신 전시 등을 실시한 양동작전을 했으며, 계엄사와 보안사는 이러한 이상기류를 감지하고 보안사 대령을 단장으로 하는 특수팀을 광주에 파견했으나, 505 보안대에서 이 감사팀을 광주시내에 묶어 놓는 바람에 외곽에서 벌어진 군분교 점령작전을 알아채지 못하였습니다.
군 통신기밀의 핵심인 음어가 고의적으로 반란군에게 넘겨졌으며, 44군데 무기고를 찾아 갈수있는 군사작전 지도와 통신을 할 수 있는 고성능 무전기가 20여대 이상 반란군에게 넘겨 졌으며, 특히 임산부를 살해한 M16 소총이 4정 넘겨져 시민군이 관리한 사진들이 확보된 상태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조사를 518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 접수를 해놓고 배당을 한 다음에 조사를 기피를 한 사살에 대하여 감사원에 정식으로 접수가 되고 배당이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 군분교 점령작전은 김대중 여단 소속의 반란군들과 전교사 지휘부 그리고 광주교도소내 간첩들과 31사단, 505 보안대 그리고 이을설 부대가 합동작전을 한 산증거로 518 국방부 특조위 그리고 특검과 검찰은 일체 조사를 한 사실이 없습니다.
박준병 20사단장은 재주도 좋아요.
좌우에서 꿀빠는 재주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