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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정 담

광주의 작계 80518 “금남로의 깽판” 제 3 강의



북한군 2 전대 300명이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공수부대 경비병 7명에게 돌맹이를 집단 투석해 중상을 입히고 시내 주둔지로 되돌아 오는 과정에서 시내에 요소 요소에 흩어져 있던 김대중 여단 병력 작전부대 수백명과 북한군 제1전대 300명은 일제히 유언비어를 살포했습니다.


전남대 정문앞에서 공수부대가 대학생 100여명을 때려 죽였다 이런 유언비어를 살포하면서 인근 파출소에 방화를 시작해 군중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 것이 바로 금남로의 깽판입니다.


이때 시내에는 진압 경찰만 있었는데 경찰 간부들 상당수도 김대중 여단 소속의 반란군이었기에 당연히 김대중 여단 반란군과 북한군 1,2 전대 병력의 난동을 거의 수수방관 하면서 방화와 파괴가 번지는 것을 지켜보다 시피하면서 7공수 병력이 투입되기만 기다렸고, 7공수 여단 병력이 투입되자 미리 전교사 지휘부가 치밀하게 짜놓은 덧에 7공수 진압병력들이 걸려들어 곤란을 겪고 그런 병력에게 “진압않고 뭐하냐? 니네가 공수부대 맞아?” 이렇게 흥분을 유도해 과격진압을 유도해 놓고 31사단장은 끝까지 쫒아가 체포하라고 지시를 하면서 진압부대는 잘 조직된 김대중 여단 반란군 5천여명과 북한군 600명에게 밀리는 형국이 되어 본격적인 시가지 유격전이 벌어지는 것 입니다.


이미 아시아 자동차 신고를 묵살한 전교사 장군들은 특전 7공수가 광주시민들을 무차별 타격하고 광주시민들을 앞세운 김대중 여단 병력들과 북한군들은 7공수를 무차별 타격하면서 나주 무기고에서 갖고 올 카빈총 등 무기와 폭발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계엄사의 김대중 여단 병력 주요인사 수배령에 이미 군용차를 탈취했던 북한군 2명은 김대중여단 병력 접선에 실패해 나주에 가서 무기를 탈취하지 못한 채 5월18일 금남로의 깽판 작전은 실패하게 됩니다.


이거 민주화 운동이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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