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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작계 80518 광주 중앙정보부의 허위보고 -제 5강의-



전자책에는 다 적시하지 않았지만 10.26이 쿠테타이고 12.12는 쿠테타 진압이었는데, 10.26 쿠테타는 이미 김재규가 청죽회 비밀회원들과 함께 박정희를 시해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해 정권을 찬탈하는 계획을 수립해 놓고 예행연습을 수차례 실시한 다음에 청죽회 비밀회원인 정승화를 궁정동 안가에 미리 데려다 놓고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를 했고, 곧이어 김재규가 정승화와 함께 육본에서 수경사 부대를 출동시켜 청와대를 포위해 박정희 시해를 비밀로 감추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수경사 부대는 육참총장이 출동시킬수 없는 부대였지만 정승화는 총리나 국방장관의 재가도 받지 않고 추후 보고도 하지 않고 수경사 부대를 출동시켰고, 총리는 이런 쿠테타를 눈감아 주고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다 신현확 총리의 제지로 불발로 그쳤는데, 후일 이 사실을 인지한 전두환이 정정승화 체포할 때 최규하를 같이 체포하지 않았던 것이 전두환의 실책이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광주군사반란이 일어 난 직후부터 그리고 광주가 이을설 부대 손에 넘어간 직후부터 이을설부대가 광주를 철수할 때 까지 최규하는 끽소리 않고 있다가 이을설 부대가 철수한 25일에야 광주에 내려가 도청을 방문한다고 설래발을 치면서 지휘체계가 없는 경찰관 142명을 광주에 출근을 시켰고, 이때 군인이나 경찰은 잡히기만 하면 공개처형을 했던 시민군들은 이들 경찰관 142명을 지휘를 했던 것인데, 이것을 최규하가 하게 했던 것입니다.


18일 새벽 칼빈총을 든 북한군 2명이 아시아 자동차에 쳐들어가 군용차량 2대를 강탈해서 나주 무기고를 습격할 작전을 광주 중앙정보부는 물론 광주 505 보안부대도 보안사령부를 속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거짓보고를 중앙정보부 차장 역할을 하면서 중앙정보부를 지휘했던 청죽회 출신 이종찬이 김대중을 보호하면서 전두환을 감쪽같이 속였던 사실을 다시 돌아본다면 박정희 시해가 쿠테타이고 정승화 체포가 쿠테타 진압이며, 쿠테타 실패가 되자 이듬해 2월 김대중 큰아들 김홍일이 김대중 여단 병력 5천명을 조직해 놓고 518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이 반란이 실패하자 이을설 부대가 철수하는 날 김재규 사형집행을 해 버렸던 것입니다.


전두환이 정숭화를 체포할 때 최규하를 같이 체포하지 않았던 잘못 때문에 오늘의 한국 역사는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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