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로간군인들>2.효천마을의 비극

중앙일보

입력 1995.12.27 00:00


5.18당시 계엄군이 시위대의 진출을 막기 위해 광주시 외곽에 지뢰까지 매설했다는 증언이 새롭게 나왔다.특히 그 지뢰를 공수부대원들이 밟아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흥분,분별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송암동 효천마을의 비극을 가져온 것 으로 드러났다.


당시 11공수여단 63대대 소속 權모(41.당시 하사),林모(40.중사),金모(47.대위)씨 등은 『지뢰가 터지면서 동료들이 무참히 죽어나가는 광경을 목도한 순간 눈이 뒤집히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오후1시쯤 효천역을 200여 앞 둔 나주~광주 국도 커브길.11공수부대는 며칠후에 있을 도청 진압훈련을 위해 송정리비행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바로 직전 시위대와 교전을 벌였던 터라 기습에 대비,주변 야산에 총을 쏘는 「위력」을 과시하며 이동중이었다.대낮인데도 비가 내려 어두웠다.


『갑자기 선두 차량이 90㎜ 무반동총에 맞아 도로변에 처박히고 사방에서 총소리가 들렸습니다.도로옆 나무를 엄폐물로 삼아 몸을 숨기는 데 여기저기서 지뢰가 터졌습니다.순간 눈을 의심했어요.이런 곳에 지뢰가 있다니….하지만 팬 웅덩이 나 폭발음으로 보아 지뢰가 분명했습니다.』


***지프 밑에서 지뢰폭발 전교사 교도대 병력이 시위대 진출을 막기 위해 효천역앞 2차선 도로 주변 야산에 매복중 송정리비행장으로 이동하던 공수부대를 시위대로 오인,사격을 하자 놀란 공수부대원들이 피하려다 지뢰를밟은 것이다.이후 양측은 30여분동안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검찰조사 결과 이 교전으로 11공수부대원 9명 사망,33명이 부상〉. 지뢰는 전교사측이 매설한 것이라는 공수부대원들의 주장에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전교사 朴모(43.당시 중사)씨는 『모르겠다』고만 대답했다.부인하지는 않았다.


효천마을 이장 김복동(金福東.74)씨도 『도로 옆에 비스듬히기대선 지프 앞부분 밑에서 무언가 「꽝」하고 터지더니 앞뚜껑이10이상 날아가 버렸다』고 회고한다.전교사가 다른 무기를 갖고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폭탄전문가들도 그런 정 도의 강력한 폭발력이라면 지뢰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한참 교전뒤 사격을 중지해보니 땅바닥엔 허리가 잘려나간 시체,손발이 없어져 신음하는 동료들이 즐비했어요.이들을 후송하면서 부대원들은 거의 이성을 잃어버렸습니다.』〈權씨〉 전교사측의사격을 시위대의 행위로 오판한 공수부대원들은 곧바로 「폭도」들을 찾아 수색작업을 펼쳤다.이때 근처에 있던 50대여자가 놀라하수구로 몸을 숨겼다.흰 물체를 목격한 몇명이 난사,그 여자는그자리에서 숨졌다〈검찰조사 결과 朴연옥(50.주부)씨〉.


인근 사찰의 행랑채에서 일하던 청년과 논에서 일하다 총소리를듣고 산으로 도망가던 농부 등도 총에 맞았다〈검찰조사 결과 權근립(33)씨등 4명〉.


***물놀이하던 아이 사격 이에앞서 63대대는 효덕국교 삼거리 부근에서 시위대 10여명을 발견,이들과 교전도중 「무고한」어린이 2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시위대와 교전중 누군가 「저기 있다」는 고함을 쳤어요.200여 떨어진 곳에서 사람 2명의 형체가 아른거리더군요.무의식중에 동료들과 방아쇠를 당겼습니다.나중에 알고보니 물놀이를 하고있던 어린이들이었습니다.』〈林씨 증언,전재수(12. 국교4).


김문수(13.국교5)군〉 『동료가 피해를 보면 보복하는 것이 공수부대입니다.평소 그렇게 훈련받았고요.공수부대 투입자체가 유혈참사를 예고한거지요.공수부대를 시위진압에 투입한 잘못과 군부대끼리 「교전」토록 한 지휘부의 오판등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겁니다.』〈權 씨〉 사회부 특별취재반=김태진,강홍준,김현승,이재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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