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165명 살아 돌아간 북한군, 이들의 전과를 공개합니다.



전남도청에 시민군 본부를 차려놓고 광주를 점령했던 이을설 북한군 중장은 1980년 5월25일 01시에 아시아 자동차에서 탈취한 군용차 19대에 분승을 해서 전남 영광 해변으로 빠져 나가 대기하고 있던 수송함에 차량 19대에 탑승한채 승선해 한국을 탈출했습니다.


탈취해 탑승한 차량은 1/4 짚차 11대 2.5톤 카고 6대 5톤 구난차와 카고 각 1대씩 2대 모두 19대 인데, 이 차량의 승차 가능 인원은 대략 196명인데, 북한군 침투 병력은 518기획의 한축인 이종찬 안기부장이 작성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600명 입니다.


이들 중 400여명이 수협빌딩 집단발포로 사망했고, 교도소 공격에서 18명이 사망했고, 11여단 공격 작전에서 2명이 사망해 435명 이상이 사망했기에 잔존 병력 165명 이하만 한국을 탈출해 북한으로 귀환했습니다.


이들은 군경민간인 170명을 살해했고, 624명에게 부상을 입혔고, 76명은 행방블명 처리되었는데, 북한군은 2.5배 이상의 인명손실을 입고 비참하게 간신히 한국을 탈출했던 것 입니다.


국민은행 살인강도가 21년만에 잡혔듯이, 광주에서 무고한 광주시민을 학살했던 북한군 실체는 42년만에 꼬리가 잡힌 것인데, 북한군은 11여단 62대대 4지역대가 수협빌딩에서 21일 오후 3시반부터 4시 사이에 집단발포를 해 400명 이상이 전멸했고, 이 과정에서 2명 정도의 광주시민이 피살되고, 유탄에 의해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북한군의 이런한 빈약한 전과 결과 보다는 북한군이 광주에 침투해 한국군과 국민을 학살한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으므로 국제범죄에 해당되게 되어 국제사법 제판소에 회부되 처벌을 받을수 있게 된 치명적 국가피해가 발생하게 되었고, 한국은 전남 계엄사령부 예하 배속 상당부대가 북한군에 협조한 사실이 드러나게 되어 앞으로 군 정군 운동에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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